해외트레킹

백두산종주 트레킹(중국 지린성,양강도) 2003.8.14-16

웰트렉 2009. 4. 27. 09:42

지리산을 출발한 백두대간 종주대는 13구간을 진행하여 속리산을 눈앞에두고,여름휴식기간을 이용하여,아쉽지만 북한쪽대간은 뒤로 미루고 최종 목적지인 백두산을 향하다.



길림성의 성도인 장춘을 경유하여 연변조선자치주의 중심도시인 연길에 도착하니 어둠이 깔려온다.

버스를 타고 숙소인 이도백하로 가는길은 간간이 비포장도로라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달린다.

차창에 걸려 따라오는 보름을 하루지난 둥근달은 내일 날씨는 걱정 말라는듯 그지없이 밝다.

달 왼쪽하단에 유난히 밝은 유성이 메달려 있는데, 6만년만에 지구에
가장 가까이 근접하고있는 화성이라고 한다.



이도백하의 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푸니 밤11시인데,내일 모닝콜이
2시에 있을거라니 잠깐 눈부치고 떠나야한다.

하기야 백두대간타면서 언제 그보다 더 자본적이 있었더냐...



백두산행 첫째날(2003. 8.14)

백두산출정이라 수면시간과 관계없이 기분이 가뿐하고 마음이 설레인다.

어제의 그 달은 중천에 밝게 떠 있다.

비포장도로를 2시간여 달리는데,좁은 도로 좌우로 수목이 우거져 마치
열병을 받으며 수목의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다.

7부능선쯤에서 대기중인 지프차로 갈아 탄다.

일행이 12명인데 지프차는 1대...

어쩔거냐 궁금할 여가도 없이 중국인 기사는 빨리 타라고 재촉한다.

장정 12명이 자기 덩치만한 배낭을 하나씩안고 지프차 안으로 쑤셔
들어가니 터질 지경인데 밖에 서성이던 현지 가이드는 푸시맨처럼
밀고들어오고 문이 닫치자 쏜살같이 달린다.

명색이 도요다지프지만 20년을 넘은듯 창문유리가 올라가다 만다.

사위는 서서히 밝아지고 준비한 헤드랜턴은 무용지물이 되고만다.

콩나물시루를 흔들듯 달려온 차에서 쏟아져나온 일행은 300여미터의
계단을 따라 천지를 향한다.
백두산의 서파능선이 멋진 실루엣으로 다가와 가슴이 설레인다.

능선아래로는 너른 구릉지대가 어머니품처럼 포근하게 펼쳐지고
각양각색의 야생화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등반대장은 고산이니 천천히 걸으라고하나 천지를 향한 빠른 발걸음을
막을 수 없다.



단숨에 조중국경인 5호경계비가 서있는 안부에올라 그 신비로운 경계와 짙푸른 천지와 첫대면을 하는 순간, 가슴이 탁 막히고 괜시리
눈물이 핑 돈다.

어떤이는 합장하여 절을 하고,어떤이는 두팔을 벌리고 정기를 마시는데 나는 자연스레 묵주기도를 바친다.

최정상 장군봉(2744m)은 천지 건너편 북한땅에 손에 잡힐듯이 서있다.

경계석을 사이에두고 자유롭게 북한지역을 넘나들며,방향을 돌려가며
열심히 카메라셔터를 눌러대는데,백두산을 14번째왔다는 등반대장이
"식사합시다"라고 소리친다.

분명 우리에겐 "금강산도 식후경"이 아니었다.

백두산위용과 천지에 흠뻑 빠지고나니 밥생각이 났다.



천지와 첫 대면을 마친 대원들은 본격적인 서파능선 종주트래킹에
나선다.

앞에 떡하니 버티고있는 마천루(2691m)봉을 좌로 우회하여 빠른
걸음으로

청석봉(2662m)에 오르니 또 다른 모양의 천지가 다가온다.

백운봉가는 길은 너른 구릉을따라 내리막을 30분 내려서니 천지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시원스레 흐르는데 이것이 압록강의 발원지라고 한다.

손으로 한 움큼 퍼마시고 땀을 식힌후 너덜지대와 초원지대를 지나니 가파른 오르막이

버티고 서있다.차근 차근 주변 경관을 감상하며 40분을 오르니 안부가 나타나고

잠시 목을 축인후 암릉구간을 통과하는데,난데없이 먹구름이 덮쳐오더니 콩알만한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한다.서둘러 우의를 챙겨입고 백운봉능선에서 빗줄기 속의

천지를 조망한다.일년에 200일 눈비가 온다니 어찌 우리만 피해가랴...

능선에 하얗게 쌓인 우박을 보던 가이드왈 이번팀은 하루에 백두산의 4계를 다본다고

너스레를 떤다.

근데, 천지 중간쯤에 검은 물체가 나타나 30여분간 유영을 하더니 물속으로 사라진다.

형태로보아 분명 물고기는 아니고 괴상한 검은 물체-"괴물"임에 틀림이없다.



탁트인 평원과 너덜지대를 경쾌하게 걸어, 서파에서 경관이 가장 좋다는

용문봉(2591m)에 오르니 맑게 갠 하늘의 뭉게구름이 천지에 가득 비춰져 장관이다.

단체사진을 찍고,주위에서 잘 생긴 화산석을 기념으로 챙겨 배낭에 넣는다.

초목이 없는 바위와 돌과 흙으로 빚어진 능선은 풍화,침식,지반침하로 끊임없이

허물어져내린다.천지쪽으로 가까이 다가서보면 바닥에 금이가있고, 무서운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토사와함께 무너지면 낭떠러지다.

그래서 현지 가이드는 안개나 구름으로 시계가 좋지 못하면 절대 천지쪽으로 붙지말라고

신신 당부를 한다.

백두산은 살아 움직인다.어제의 백두산은 더 이상없다.오늘의 백두산도 오늘만 볼 수 있다.

능선 어딘가는 하염없이 허물어져 내린다. 엄격하게 보면 내일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뿐이다.



지천으로 깔린 야생화를 벗삼아 한참을 걷다보니,달문으로 내려 가는길은 바위와 돌맹이로

형성된 급경사 내리막이다.군대 말년에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 했듯이

마지막 하산길을 건들거리는 돌맹이를 조심조심 밟으며 내려서니 달문이다.

천지물에 손을 담그고 물속의 예쁜 돌 몇조각을 기념으로 챙기고 천지와 눈높이를 함께한다.

이곳은 일반 관광객이 몰려오는 곳이라 과히 시장터를 방불케한다.

급경사의 돌계단을 30분간 내려오니 우측으로 68m의 시원한 장백폭포가 장쾌하게

쏟아진다.이 물이 굽이 굽이 흘러 송화강으로 합류한단다.

좀더 내려오니 노천온천에서 계란을 삶아 판다.

촐촐한 배를 따끈한 먹거리로 채우고 내려오니 18km,10시간의 백두산서파종주가 끝이 난다.





백두산행 둘째날(2003. 8.15)

내친김에 백두산 일출을 보자고 3시에 숙소를 출발하여 북파매표소에 당도하자

문지기는 아직 자고있는지 보이질않고 가이드만 부지런히 들락거리더니 산행을 금한다고

차단기를 올려주지 않는다.20여분 지체후 무얼로 구워 삶았는지 육중한 차단기가 올라가고

언덕배기에서 버스를내려 숲속을 헤치며 조용 조용 올라가니,지프차 1대가 대기중이다.

숙달된 동작으로 순식간에 몸둥이를 쑤셔넣고 정상을 향해 달음질 치는데,9부능선쯤의

경사로를 굽이도는데 좌측으로 붉은 불덩어리가 솟아 오른다.

장엄한 일출이다.58번째 맞는 광복절의 아침해를 우리는 백두산에서 짜릿하게 맞이한다.

내려서 사진이라도 한장 찍자하나, 까무잡잡한 중국인 기사는 아랑곳없이 낡아빠진

도요다지프의 엑셀레이터를 더 힘차게 밟을 뿐이다.

북파의 고봉 천문봉(2670m)에 오르니 동녁 하늘이 온통 붉은 색깔로 물이들고,

낮게 깔린 태양의 햇살이 검은 천지를 밝게 비춘다.

어제 종일 걸어온 서파능선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동서로 4km,남북으로 6km 둘레가 13.2km의 천지이니 보는 각도에따라 각양 각색의

절경이다.

이젠 천지사진을 보면 어디에서 찍은 건지 알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아는 만큼 느낀다고 했던가...



이제 천지를 뒤로하고 평평한 구릉지대와 작은 봉우리를 지나며 편안한 북파트래킹이다.

각가지 야생화가 지천에 깔려있고 길이 제대로 나지않아 야생화를 피해 발을 디딜려니

엄청 신경이 쓰인다. 종주는 어디나 일렬종대로 가지만 이곳의 넓은 구릉은 여러사람이

함께 옆으로 서서 걸을 만큼 넉넉하다.

한참을 경괘하게 걷다보니 좌측 후사면으로 장백폭포의 위용과 길다란 계곡이 한눈에

들어오고,계곡 너머 능선 가운데 쯤 소천지가 옹달샘처럼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1시간을 내려와 수목한계선에 닿으니, 자작나무와 가문비나무군락이 반겨준다.

리프트가 설치된 작은 스키장을 따라 내려오는 길은 많은 수목들이 우거져 따가운

햇살을 막아준다.놀며 놀며 걷다보니 백두산온천에 다다른다.

83도의 온천수에 몸을 담그니 이보다 더한 행복이 또 있을까...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3시간을 하염없이 달려 용정에 들어선다.

이곳은 독립운동가들의 혼이 베여있고,명곡 선구자의 본향이 아니던가.

아담한 시가지 너머로 작고 맑은 해란강이 흐르고,우측 봉우리에 일송정과 푸른 솔이

늠름하게 시가지를 내려보며 서있다.

민족시인 윤 동 주의 모교인 대성중학교 교정에는 윤동주시비가 크게 세워져있고,

당시 사용하던 교사는 기념관으로 변하여 친절한 조선족 아가씨가 역사를 자상하게

설명해주고 마지막으로 박명록에 서명을 하란다.

이름과 주소뒤의 마지막 칸은 후원금 적는 란인데 자의반 타의반 일정금액을 적고

희사를하게 되어있다.

29세로 요절한 천재시인 윤동주는 저승에서도 가난한 대성중학교를 먹여 살린다.



1시간을 달리니 두만강을 사이에 둔 조선과 중국의 국경지역인 도문에 다다른다.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중간까지 가는데 입장료를 받고,북한지역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데 또 돈을 받는다.

모든게 돈으로 통하는 중국. 결국 돈이 사회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는 현상은 이곳 뿐아니라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

조선족 가게에서 시원한 막걸리로 목을 축이는데 북한산 상황버섯이 몸에 좋다며

사라고 난리를 쳐서 어떻게 먹냐고 물었더니 깍쟁이같은 아가씨왈 "사면 가르쳐 주지요"다.

재치도 있지만 목소리에서 닳고 닳은 상술이 베여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중앙정부에서 소외받고 사는 우리 조선족들이 보다 잘 살게 되길

간절히 빌어본다.



요녕성 성도인 심양(옛이름,봉천)을 경유하여 귀국길에 오른다.

중국북방항공의 예쁜 스튜어디스가 건네준 맥주에 면세점에서 산 양주로 폭탄주를 만들어

일행들과 송별파티를 하다보니 창밖으로 인천공항이 내려다 보인다.



짧지만 무엇하나 아쉬움없는 멋진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