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예쁜 후배,은주의 지리산이야기 2009.12

웰트렉 2009. 12. 31. 10:01

 

< 연말 증후군>

 

연말이면 연말증후군을 심하게 앓는 것 같다.  아줌마들이 명절이 돌아오는 것을 끔직히도싫어하는 것처럼말이다.

 

잠 못이루게 만든 불면의 고민들에도 불구하고 연말에 계좌를 열어보면 지난 나의 1년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냉혹하게 평가받는 그 결과치 앞에서 난 연말마다 아프고 또 우울해진다.

 

연휴를 앞두고 긴장이 풀려서일까. 연말증후군은 매번 감기를 동반해서 찾아온다.

감기약을 먹으며, 감기가 아닌 우울증이 치유되기를 바란다. 올해는 이제 과거일뿐이고  난 또 내년을 맞이해야 하니깐. 그래, 떠오르는 태양처럼 내년에는 다 잘 될거야 라는 주문을 외면서. 그래서 일출을 보러가는 일들이 어느덧 어떤 의식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리고 결과에 상관없이 1, 꿈과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준 나에게 여행이라는 선물을 주는것이라고, 그런 의미도 부여해본다.

 

크리스마스 3일 연휴. 올해는 지리산이, 중산리길을 걷고 싶었다. 다행이 지리산 친구들과 산장 예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 25 : 서울 진주 중산리 장터목산장 >

 

핸드폰 충전기 어댑터를 잃어버렸다. 차에서 내리면서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그때 흘린 모양이다.  연휴 내내 걱정할 어머니께 일단 안부 전화 드리고 나니 배터리가 하나밖에 안 남는다.

 

허걱..내일 아침 7시차를 타려면 늦어도  4시 30 일어나야 하는데 하필 알람시계 마저도 배터리가 없는지 멈춰선지 오래다.

 

에휴.. 집안일 대충 마치고 짐 꾸리니 12 다 된 시각, 지리산에 가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었을까. 1시간 간격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선 기어이 4시 20 눈을 뜨고야 말았다. 역시 인간의 의지력은 대단한 것 같다. 장하다 은주.

 

7, 남부터미널에서 진주행 버스를 타고 가니 정확히 10시 30 진주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 버스에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남도의 공기는 정말 달랐다. 이리 포근할줄이야 ..

 

주절이랑 비목을 만나 11 중산리행 버스를 탄다.  옆자리에 앉은 주절이의 주절거림은 참 언제 들어도 재미난다. 그래, 일상사를 쉴새없이 주절거리는 주절이의 그 수다가 난  그동안 많이 그리웠던 것 같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의 일손을 도와 농사일에 매진하는 철의 여인 주절이. 겨울 농한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시간을 낼수 있어 나의 지리산 여행길에 합류해준다.   비목은 스페인 산티아고 성지순례를 마치고 당분간 더 백수생활을 즐기고 있다. 1월중 입사할 회사에서 지금 연봉협상중이라는데  협상이 잘 끝났으면 좋겠다.

 

, 중산리길.

 

중산리길을 다들 싫어하는 이유중 하나가 버스 주차장에서 30분 넘는 오르막길을 걸어야 한다는것이다. 미숙언니가 스트레스 다 풀고 오라고 아침에 문자를 보냈는데. .. 베낭무게만으로도 벌써부터 스트레스 받고 있다. 간만에 뽕베낭 (ㅎㅎㅎ 사실 겨울철 동계베낭은 부피 대비 무게는 덜 나가는 편이다. 그래도 베낭 자체의 무게도 있으니) 을 메었더니 고개를 숙이기도 어렵고 어깨에 묵직한 통증이 온다. 그래 이게 다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나의 삶의 무게들인걸.. 무겁다고 버릴수 없는.  가끔씩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그 무게감을 느끼고 싶어질땐 번번히 큰 베낭을 찾게 된다.

 

용궁식당.. 언제나처럼 사장님은 반갑게 맞아주신다. 아들이 한때 장터목 대피소에 근무했던지라 중산리에 가면 항상 찾게되는 용궁식당.  우리를 기억하지는 못하시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당신의 자식들인양 살갑게 대해주시니 용궁식당은 방앗간이고 우리는 참새일 따름이다.

 

동동주 한단지를 비우고 알따따한 기분으로 본격 산행 출발. (이때부터다. 콧물과의 전쟁은 23일 산행 내내 이어지고, 감기약+술과의 칵테일도 쭉 계속된다.)

 

중산리길은 그렇다. 그 누군가와 키스 했던 기억이 있는 길인가하면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난 후배가 참 좋아라해서 같이 다니던 길이기도 하다. 그냥 추억으로만 묻어두고 되돌리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는가 하면, 이제는 볼수 없어서 더 안타까운, 그래서 울컥해지는 마음이 드는곳도 중산리 그 길이다.  그래서 한동안 더 찾기 어려웠던 길이었을까. 정말 간만이다.

 

붉은광장 (붉은빛깔의 너덜지대를 우리는 붉은 광장이라 부른다)에 들어서서 소주 한병을 꺼냈다. 경상도 사투리로 누부야 라고 불러주던 누리한테 먼저 부어주고 하늘 한번 쳐다보면서 씩 한번 웃어주고는, 나도 한모금. 주절이도 한모금. 비목도 한모금. 허걱 마시다보니 누리한테 준것보다 우리가 더 많이 마셨다. 에궁 에궁.

 

캐나다 로키산맥 가서는 수목성장한계점을 보았다. 중산리길을 오르다보니 비가 눈이 된다. 비가 눈이되는 눈비내림분기점은 어디메쯤일까? 라는 생각을 하며 혼자 피식 웃는다. 눈비내림분기점 , 과연 그런 단어가 있는가 하면서 ..

 

장터목 산장 500미터 남겨 둔 지점, 샘터를 발견한 비목이 물을 뜨러간다. 동절기에는 산장 근처 샘터가 얼어버리기 때문에 식수가 큰 문제이다. 다른 사람을 위한 예의이자 환경보호 차원에서 세제 사용은 절대 금지다. 설거지는 물론 세수도 물티슈로 해결하고, 양치질은 치약 없는 칫솔질로만 만족해야 한다. 코펠 버너에다가 음식물, 그리고 물까지 가득 채운 물통을 짊어진 비목의 걸음걸이는 자꾸 늦춰질수 밖에 없다. 미안하고 또 고마운 친구들.

 

6 장터목 도착. 짐을 풀고 오랜만에 술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푼다. 주절이가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저녁만찬은 냉이된장국에 수수부꾸미다.  .. 반죽해온 수수를 동그랗게 빚어서는  후라이팬에 식용유를 약간 두르고 굽다가  설탕을 끼얹어 반달 모양으로 접어서 부쳐내는 수수부꾸미, 해발 1700 가까운 고지에서 맛보는 수수부꾸미와 직접 키운 냉이를 집된장에 버무려 와서 끓여내주는 냉이 된장국맛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다음날 천왕봉 일출을 보러 가자는 약속을 하고 9 넘어 잠자리에 든다. 내 몸상태를 걱정해서 무겁게 들고온 침낭을 나에게 주고 대신 산장에서 빌린 모포를 덮고 자는 주절이. (벽소령산장에서도 그랬다. 난 덕분에 아주 잘 잤는데 주절이는 이번엔 추워서 잠을 거의 못잤단다.) 내 산친구들은 왜 다들 이리도 착하고 이쁜지 모르겠다. 지리산을 좋아라 다니면서 지리산을 닮아가는 친구들.

 

< 26일 장터목산장 천왕봉 장터목산장  세석산장 벽소령산장>

 

새벽 4부터 산장안은 일출을 보러 가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밤새 뒤척이다가 그래 일출 보러 가는거야 라는 다짐을 하고 일어난게 6, 장비를 갖추고 천왕봉을 향해 나서니 벌써 6시 30이다. 해가 7 40분정도에 뜬다고 하는데 벌써부터 마음이 조급해진다. 고사목 지대인 제석봉을 지나면서 너무 추운 칼바람에 고개를 들수가 없다. 버프(안면마스크)를 하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눈만 간신히 내 놓으니 시야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강한 바람에 몸이 휘청인다. 눈물나게 추운건 소백산 이래 처음인거 같다.

 

그럼에도 지평선에 붉은 기운이 퍼지면서 동이 트고 있기에 발걸음을 멈출수가 없다. 천왕봉 일출이 처음은 아니건만, 어떤 의식을 앞두고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필사적으로 나아간다. 그대 정녕 하늘로 가려는가? 천왕봉에 가기전 마지막 관문, 통천문을 지나면서 항상 느끼는 감정이다. 하늘로 오르려는자, 하늘의 기운과 맞닿으려 하는자들이  한국인의 기상의 발원이 되는 천왕봉을 그렇게 오르는것이다.

 

천왕봉에 오르니 해가 반원처럼 지평선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드리는  간절한 기원.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소서..

 

장터목으로 다시 돌아와 간단한 요기를 하고 세석으로 향한다. 개인적으로 지리산 주능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길 중의 한곳이다. 연하봉을 지나 가는곳에 꼬마 눈사람 두개가 길가에 서 있다. 추운 날씨에도 꼬마 눈사람을 만들어 등산객들의 지친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는 그 누군가가 고맙다.

 

세석산장에서는 간단히 캔커피 하나 마시고 산행을 계속하기로 했다. 산에서 내 쓰레기는 당연히 내가 가져 내려간다는건 맞는데, 매점에서 파는 캔을 다시 회수해주지 않는 방침은 은 다소 야속하기도 하다.

 

영신봉을 지나 어느 지점,  아이젠 한 발이 서로 엊갈리면서 미끄러졌다. 베낭을 맨채로 세바퀴정도 구르다가 고사목 나뭇가지에 내 머리를 부딪히고서야 비로서 미끄러짐이 멈춘다.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본다. 다행이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아무렴, 폼생폼사로 살아온 내게 있어 아픈것보다는 쪽팔리지 않음이 다행이다. (말은 이리 해도 사실 아찔했었다.)

 

세석에서 벽소령사이  4킬로, 2킬로의 이정표가 표시된 지점에서 주절이는 그런다. 벽소령까지는 2킬로 같은 4킬로이고 세석까지는 4킬로 같은 2킬로라고. 우리네 인생도 그러하지 않을까. 살다보면 정말 힘겹게만 느껴지는, 그래서 유난히 더 길게만 느껴지는 때가 있는가 하면, 너무 신바람 나서 행복한 순간이 찰나였다고 느껴지는.

 

군데 군데 눈이 녹아 아이젠이 애물단지로 변하면서 발바닥에 통증이 전해진다. 에휴 모르겠다. 미끄러져 죽으나 아파 죽으나 매한가지. 아이젠을 벗어던지고 조심 조심 스틱에 의지해 걷다보니 벽소령 산장이 눈에 들어온다.

 

세석에서 화장실 갔을때였나보다. 비목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벽소령에 친구들이 온다고 한다.  비로봉, 전설, 방장산.. 결혼한 유부남 친구들이다.

 

방장산은 지리산 오려다가 얼떨결에 와이프랑 화해해버려서 못올거 같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한마디 했다. 간단하네, 그럼 다시 시비걸어 싸우고 와 .

 

연휴때마다 얼마나 산에 오고 싶었을까? 가족이 당연 산보다 중요하기에 가고픈 맘을 누르고 또 눌렀을 그 친구 세명이 음정마을 통해 군사도로로 올라왔다.

 

벽소령 취사장에 모여 5부터 술잔을 기울였다. 와인부터 소주에 꼬냑까지. 술을 마셨다기보다는 같이 산행하면서, 전문 산악인을 꿈꾸면서, 같이 마라톤하면서, 같이 여행하면서, 10년 가까이 지내온 추억거리를 마셨다고 하는 편이 옳을것이다.

 

취사장에 놓인 술병을 보면서 옆팀 아저씨가 술 좀 나눠달란다. 한 두어잔 얻어 마시던분, 급기야 만원짜리 한장을 내 놓고는 술을 한병 팔라 하신다. 1500원에 사온 소주 한병이 만원으로 둔갑하는 상황. 약간의 운반비용(이건 순전히 노동력이다)을 제한다면 몇프로 수익인가?  근데 결국엔 후회했다.  나중에는 술이 모자랐으니..

 

술 먹다 노래도 부르다 내가 그랬다.  우리 마흔에는 히말라야 가자. 라고.. 순간 어두워지는 유부남 친구들의 얼굴 , 에휴.. 머 안되면 어쩔수 없지. 유부남 친구들의 와이프들을 꼬셔서 같이 가야겠다 ㅎㅎㅎ

 

비박장비를 챙겨와서는 굳이 밖에서 자겠다는 친구 세명을 두고 12시쯤 우리는 취침하러 들어간다.  밤에 올려다 본 하늘. 정말 별이 참 많더라.. 아니 어쩜 별이 아니라  우리의 꿈들을 밤하늘에 박아놓은 것일지도.

 

(27 : 벽소령산장 군사도로 음정마을 함양 서울)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하산하기로 한다. 한때 젊음을 믿고 막 달리다 이젠 다들 부실해진 무릎팍에 하산길을 걱정해야 하는 상태인지라 군사도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올해로 삼재가 끝난다고 한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좋은 일만 생길거라고 했더니 방장이 한마디 한다. 그래 우리가 내년엔 38광땡 아이가.. ㅎㅎㅎ

 

바리케이드에 주차해둔 친구차에 베낭 6개 싣고 덩치가 산만해진 친구 6명이 타고 함양까지 가서 뒤풀이 하고 서울로, 대전으로 , 창원으로 각자의 길을 간다.

 

지리산이 있어서, 친구들이 있어서 너무도 행복했던 겨울 산행.

감기도 어느덧 나았고 연말 우울증도 나았다.

내년 1년 또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고 온 지금 .. 모든 일이 너무 잘 풀릴거 같아 오히려 조금은 설레인다.

 

내년엔 또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2009년 10월 아띠트렉산행중 지리산 장터목에서 세석가는길 연하봉에서 은주씨와 함께...

 

***  은주의 신선한 산행기엔 山이 있고,人生이 있고,友情이 있기에 잔잔히 미소짓게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