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김현승
<감상>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를 다시 읽어 봅니다. 낙엽이 지는 때는 인생의 종말이 다가오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1연엔 인생의 황혼기에 모든 가식을 벗어던지고 겸허하게 자신을 가꾸고 싶다는 열망이 드러나 있습니다. 2연에 한 사람을 택하게 해달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열망인 것입니다. 그 사랑의 열매를 위하여 시간을 가꾸게 해달라는 염원이 배어 있습니다. 험난한 삶의 모든 질곡을 지나 순결한 신앙의 세계인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화자가 최후에 다다른 곳, 그곳은 절대 고독의 세계인 마른 나뭇가지입니다. 이 고독의 절대경지에서 진정한 자기자신과 대면하려는 화자의 준엄한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김현승(1913~1975 ) : 평양 출생. 호는 茶兄. 제주와 광주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숭실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시집에 <견고한 고독>과 <절대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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