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새긴 좋은 글

장수의 비결 (12)

웰트렉 2009. 8. 26. 12:35

건강전도사 5인, 그들의 장수비결

커버스토리]100세 건강 추구하는 건강전도사 5인, 그들의 장수비결
뉴스메이커  기사전송 2006-03-10 11:31 

무병장수. 누구나 이루고 싶은 꿈이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면 꼭 듣는 이야기가 있다.‘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편안한 마음’은 너무나 평범한 진리다. 하지만 실천은 정작 어렵다.
‘누가 마음을 편하게 가지지 못해서 그러나’라는 의구심도 갖게 마련이다. 전문가에게 ‘그러는
당신은 건강합니까?’라고 되묻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앞에 떳떳한 장수 건강전문가가 있다.
다른 사람들의 건강을 보살피면서 장수를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이들의 건강비법이야말로
체험에서 우러난 장수비법이다. 100세 건강을 구가하고 있는 건강전문가를 찾아보았다.
건강전문가인 이들의 비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깊이 숨겨진 장수의 비밀을 하나둘씩 알 수 있다.


1. 테니스 등 운동으로 장수하는 김응진씨(91세·의사)

“몸을 많이 움직여야 오래 살지요”

서울 노원구 하계동 을지병원의 당뇨센터. 맨안쪽 진료실에 들어서면 백발이 성성한 노의사가 진료를 한다. 노의사는 안경도 쓰지 않은 채 깨알같이 적힌 당뇨 수치 기록을 들여다본다. 앞에 앉은 노인환자가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하자 노의사 김응진 박사의 목소리는 커졌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 보이는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서도 모두 김 박사보다는 연하다. 1916년생인 김 박사는 올해 나이로 91세. 김 박사가 “환자들이 대부분 내 밑이지”라고 말하자, 곁에 있는 간호사는 “90대 환자가 진료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어요”라고 거들었다. 연하인 환자보다 김 박사는 더 젊음을 자랑한다. 진료 기록을 꼼꼼히 들여다 보고, 환자에게 처방을 내린다. 김 박사는 “아직도 시력뿐만 아니라 청력도 아무 이상이 없어”라고 말했다.

아들 둘은 벌써 환갑을 넘었다. 첫째 아들 역시 당뇨병 전문의로 충남대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둘째 아들은 정년퇴임했다. 하지만 김 박사는 여전히 현업에 종사하고 있다. 손녀딸까지 당뇨병을 전공해 3대 당뇨의사가 진료활동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김 박사는 하루에 50∼60명의 환자를 진료한다. 아침 6시 30분 병원에 도착한 김 박사는 환자들의 공복 혈당을 체크한다. 8시 30분 회진을 돈 후 12시까지 진료를 마친다. 오후는 산책을 즐긴다. 저녁에는 TV를 시청하다가 9시 30분에 잠들어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일주일에 나흘 진료하고 이틀은 쉰다.

산업은행 촉탁의사로 일할 당시 친해진 은행 인사들과 일요일에는 테니스를 친다. 70대의 노인들과 겨루지만 실력은 엇비슷하다는 것이 김박사의 이야기. 테니스는 20대 중반에 시작해 50∼60대에는 아마추어 대회에서 1등도 했다.

김 박사는 “나의 장수 비결은 운동이지”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경성의학전문학교(서울대 의대 전신) 재학시절 축구선수와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할 만큼 운동을 즐겼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이사장, 대한테니스협회 감사를 맡기도 했다. 매주 즐기던 골프는 하루 5∼6시간 걷는 코스 때문에 지난해에 그만뒀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집 근처 양재천에서 4∼5㎞를 걷는다.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90대의 나이에도 주량은 크게 줄지 않았다. 일요일 테니스를 치고 난 뒤 함께 술을 마시러 가서 소주 1병을 거뜬히 마신다. 분위기가 좋아 많이 마실 때는 2병도 마신다. 담배는 처음부터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운동만으로 90대까지 장수할 수 있을까. 장수 비결에 대한 그의 답변은 한결같다. “운동을 하고 자기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90대에도 현직 의사로 활동하는 것이 또 하나의 건강비결인 셈이다. 통일이 돼 북에 있는 부모님 산소를 찾고 싶은 소망도 장수 비결의 하나. 그는 “죽기 전에 고향인 평양을 가고 싶다”고 말한다. 부친이 84세까지 살았으니 그는 장수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잔병치레를 하지 않고 평소 감기에도 자주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몸을 많이 움직여야 오래 살아요”라고 말하는 김 박사는 특별한 음식은 물론 보약 한번 먹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아무 것이나 가리지 않고 먹는 편이라는 것. “보약을 쓰는 것보다 운동이 보약”이라고 또다시 말한다. 당뇨병 환자에게도 그는 “많이 걸어라”고 충고한다.

1935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면서 의사의 길을 걸은 지 벌써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서울대 교수 시절인 1959년 교환교수로 미국에 갔다가 당뇨병의 중요성을 감지하고 불모지인 한국에 당뇨병 연구의 기초를 닦았다. 대한당뇨병학회를 창립하고 당뇨 연구 의사에게 연구비를 지원할 만큼 당뇨학계에서 김 박사는 권위자이자 기여자로 인정받는다. “앞으로도 계속 정상적인 진료활동을 하고 싶다”는 김 박사는 “누구나 몸 관리를 잘 하면 90살은 다 살 수 있다”고 말했다.



2. 사상체질의학 전문가 박인상씨(84세·한의사)

“남한테 좋은 음식이 무슨 소용있어요”

양재 동일한의원의 박인상 원장은 1923년생으로 올해 나이로 84세이다. 매일 아침 양재천에서 3㎞를 걷는다. 저녁에는 다시 2㎞를 걸을 만큼 청장년 못지않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속보는 아니지만 아침저녁으로 각각 40분∼1시간 동안 하는 걷기운동이 박 원장의 건강관리 비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여든 살을 넘어선 나이에도 박 원장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환자를 진료한다. 하루 진료시간만 보아도 그가 젊은이 못지않는 체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녁 9시 뉴스를 보면서 잠이 든다는 박 원장은 3∼4시쯤 일어나 일과를 시작한다. 하루 6∼7시간의 수면을 취하는 셈이다.

사상체질의학의 전문가로 2002년 제4회 이제마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박 원장은 자신의 체질을 태음인이라고 말했다. 태음인에 알맞은 야채·콩나물·두부를 즐겨 먹는다. ‘건강 유지를 위해 특별히 먹는 음식이 없냐’는 질문에 박 원장은 손을 내젓는다.

“각자 체질에 맞아야지 남한테 좋은 게 자기한테 무슨 소용이 있어.”

사상체질의 전문가답게 박 원장은 자신에게 좋은 음식이 다른 사람 모두에게 좋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박 원장은 “무엇을 먹고 금방 낫는 만병통치약은 없다”면서 “자기 체질에 맞는 것을 먹으면 된다”고 말했다. 자기 체질을 알아야 장수할 수 있다는 것이 박 원장의 지론이다.

그가 강조한 장수비법은 신선한 공기, 청량한 물, 운동, 마음 다스리기. 박 원장은 신선한 공기는 흙냄새 맡으면서 걷는 아침 저녁의 운동으로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박 원장은 “돈을 내버려가면서 운동하지 말고 그냥 걸으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술·담배는 40이 되기 전에 끊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술을 많이 먹어 여러 번 실수를 하면서 술을 거의 마시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마음 다스리기를 최고의 장수비법으로 내세웠다. 박 원장은 “만 가지 병이 마음에 달렸다”면서 “마음이 어지러워진 것이 병”이라고 설명했다. 마음을 다스리는 그의 비법은 남을 용서하고 마음을 비우는 것. 마음을 다스리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만병이 쉰다는 진리를 강조했다. 그는 “텔레비전에서 과학적 성분 갖고 뭐가 좋다고 얘기해도 실제로는 맞지 않다”면서 “우리 손만 보더라도 기분이 좋고 나쁨에 따라 차가워질 때가 있고 따뜻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에게도 ‘마음’을 강조한다. 박 원장은 “나는 보조역할을 할 뿐”이라면서 “병은 내가 고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약은 조금만 지어준다는 것이 박 원장의 설명이다.

박 원장은 1956년 한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한 후 50년 동안 환자를 진료해왔다. 하지만 그의 한의학 입문은 그보다 한참 더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총독부 시절 조선의생제도 1기 출신인 부친이 한의사였기 때문. 부친의 무릎에서 한의학을 배웠다. 84세의 인생이 모두 한의학 공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부친에게 배운 사상체질의학이 한평생 걸어가는 길이 됐다.

부친 역시 76세까지 살 정도로 장수했다. 평소 소식을 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베풀어라’라고 강조했던 박 원장의 부친은 좋은 것이 있더라도 해가 떨어지면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박 원장의 부친은 어려서 건강이 나빠 업혀서 공부하러 다닐 정도였다. 한의학을 배우면서 건강해졌다고 한다.

박 원장은 “선천적으로 건강이 나쁘더라도 후천적으로 자신이 잘 관리하면 오래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천적인 건강을 강조했다. 어머니 뱃속에서 건강해야 오래 살 수 있다는 것. 박 원장은 책력을 꺼냈다. 장가가는 날, 천둥·번개 치는 날, 기분이 나쁜 날, 입춘·추분 등 절기에는 성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튼튼한 아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진료가 없는 토·일요일에 박 원장은 친구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며 세상 이야기를 나눈다. 박 원장의 아내 역시 81세로 장수의 길을 함께 가는 동반자다. 그는 “잘 관리하면 백 살은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3. 요가가 아니면 장수할수 없다는 정태혁씨(85세·요가수행자)

“하루 30분 물구나무 서기 노화방지 최고”

불교학을 연구하던 동국대 정태혁 명예교수는 1960년 일본 도쿄대 대학원 재학시절 평생의 동반자인 요가를 만났다. 인도요가 지도자인 비타르다스 요기(요가수행자)와 일본인 오키 선생으로부터 요가를 배웠다. 교토에서는 사호다(佐保田) 박사와 함께 요가를 연구, 수련했다.

1922년생으로 8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면 3시간 동안 요가를 수행한다. 제자인 한국요가문화협회 정강주 회장은 “우리 같은 사람도 물구나무 서기를 하면 10분을 채 넘기지 못하는데 (정 교수는) 매일 30분 동안 물구나무 서기를 한다”고 말했다. 80대 중반의 나이에도 제자들이 따라하지 못할 정도라는 것. 정 교수는 “노화로 뇌세포가 죽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물구나무 서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인도 하루 1시간 정도의 요가 수행에 만족하지만 정 교수는 3시간의 요가 수행을 거르는 법이 없다. 그는 더 많이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오후까지 수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일도 하자면 3시간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꼭 해야 할 동작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요가의 특성상 천천히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딸과 사위가 있는 미국 뉴욕으로 3년 전 건너간 정 교수는 대학에서 요가 강의가 있을 때마다 한국에 머문다. 지난해에는 동방대학원 대학교에서 요가를 강의했다. 미국 뉴멕시코의 자연치유대학 석좌교수인 그는 올해에는 한국의 석박사과정 분교에서 요가를 가르치기 위해 귀국했다.

교수는 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로 재임하다 1987년 정년퇴임한 후에도 명예교수로 강단에 계속 섰다. 요가를 널리 전수해 한국요가문화협회의 지도자 300여 명에게는 구루(어둠을 물리치는 자라는 뜻으로 스승을 말함)가 됐다. 일반 회원은 수천 명에 이른다. 제자들에게 “무엇이든 지나치게 하지 말고 중도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강주 회장은 “성격이 유해서 은사님이 화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2001년 연꽃마을 출판사에 펴낸 ‘멋지게 살고 멋지게 가는 길’이라는 책에서 정 교수는 ‘인생은 80부터’라는 멋진 표현을 만들어냈다. ‘인생은 60부터’라는 옛말보다 더 나아간 것이다.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것도 모두 요가 덕분이라고 정 교수는 거침없이 말한다. 정 교수는 “요가가 아니면 이만큼 건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요가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요가 관련 책을 집필하는 데 하루를 보낸다. 책을 읽는 데에도 시력은 아무 불편이 없다. 80대 중반의 나이에도 튼튼한 치아를 갖고 있는 데다 청력도 좋아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양정고 출신인 그는 동문들과의 등산에서는 최고의 연장자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앞서 나간다고 한다. 그는 관악산과 북한산을 자주 오른다. 주로 채식을 하지만 가리는 것 없이 육류도 먹는다. 현미밥과 된장국, 야채 반찬이 주로 먹는 음식 메뉴다.

할머니가 88세, 모친이 91세, 부친이 80세까지 살았을 정도로 장수 집안의 체질을 타고 났다. 80대인 부인도 건강해 100세 건강집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장수비결을 묻는 질문에는 영락없이 ‘요가 때문’이라고 답한다.

“마치 흙으로 만든 도자기를 불가마 속에 넣어 구우면 도자기가 오래 가는 것처럼 인간도 요가를 하면 오래 살 수 있습니다. 요가는 수천 년 동안 실제로 수련한 비법을 제자에게 은밀하게 전수해 내려온 것입니다. 학문적으로, 생리학적으로 인간은 120세까지 살 수 있습니다. 문제는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인간의 한계는 120세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 이상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장수에 관해서 그는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요가로 모든 것을 내가 해보고 시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가를 통한 그의 장수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4. 뜸으로 100세건강 추구하는 김남수씨(92세·침구사)

“하루 10분간 뜸뜨며 휴식에 들어가요”

1915년생. 올해 나이로 92세. 100세를 불과 8년 앞두고 있는 김남수 남수침술원 원장은 언뜻 보기에도 90대의 나이를 못 믿을 정도다. 흔히 90대라고 하면 겨우 뒷방에 누워 있는 노인을 연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그는 정통침뜸교육원의 2층 사무실 계단을 거침없이 올라왔다. 김경아 뜸사랑회 교무과장은 “(김 원장을) 하루 종일 따라다니다 보면 숨이 차서 못 따라 간다”고 말했다.

그의 하루 일과는 20대 젊은이 못지않게 강행군이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남수침술원에서 환자를 진료한다. 하루에 50명을 상대하면서 직접 침을 놓고 뜸자리를 잡아준다. 아침 6시부터 시작된 진료는 오후 5시면 끝난다. 저녁시간은 정통침뜸연구소에서 만드는 책을 검토한다. 90대의 나이에도 안경을 쓰지 않고 책을 읽는다. 1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든다. 매일 5시에 일어나므로 하루 5시간의 수면으로 90대의 나이에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인근 창신동 금호빌딩에서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 봉사활동을 펼친다. 월요일 오전에는 국회, 오후에는 감사원에서 역시 봉사활동을 한다.

건강비결을 묻자, 김 원장은 한마디로 대답한다.

“뜸이 제 장수 비법이죠.”

아침 9시가 김 원장이 뜸을 놓는 시간이다. 아들이 뜸을 놓으면 김 원장은 10분 동안 휴식에 들어간다. 뜸을 놓는 시간 잠깐 눈을 붙이기도 한다. 10분 동안의 뜸으로 100세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김 원장의 설명.

“제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없어요. 제가 100세를 살면 사람들이 뜸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저절로 알게 될 거예요. 저 혼자만 건강하면 잘 모르잖아요. 원래 체질이어서 그렇구나 할 테지만 뜸사랑회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건강하고 오래 살아요. 뜸이 그만큼 좋은 거예요.”

미국으로 여행할 때에도 같이 따라간 젊은 사람들보다 시차적응을 잘 한다고 한다. 김경아 교무과장은 “(김 원장은) 보약이나 건강음료를 전혀 먹지 않는다”면서 “제 시간에 식사를 하고 적당한 양 이상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하루에 한 번 뜸을 뜨는 것만큼은 절대 거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젊었을 때는 담배를 많이 피웠다고 한다. 피울 때 몰랐지만 끊고 난 뒤 담배가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 김 원장의 설명. 술은 전혀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한다.

김 원장은 침구사였던 부친의 가업을 이었다. 일제시대였던 1943년 침구사 면허를 딴 후 60여 년의 세월 동안 침뜸을 놓아왔다. 어려서 잔병치레를 전혀 하지 않았던 만큼 건강체질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부친도 75세에 돌아가실 정도로 장수한 편에 속했다.

인터뷰 도중 간간이 다른 건강 비결을 물으면 “내가 조금 전에 이야기했잖아요. 뜸이 비결이에요”라고 답변한다. “의학하는 사람이 오래 못 살면 안 되지”라고 김 원장은 덧붙였다. 하루 종일 서서 진료하는 그는 운동할 시간조차 없다. 그런데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뜸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원장은 어릴 때부터 뜸을 뜨면 더욱 좋다고 말한다. 자신도 어릴 때부터 뜸을 맞아왔다는 것. 손자·손녀 역시 낳은 지 이틀 만에 뜸을 떠 주었을 정도로 뜸 예찬론자이다. 그는 집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무극보양뜸을 권한다. “지금 같으면 백 살까지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그의 마지막 인터뷰 내용도 뜸 예찬으로 끝났다.

“요즘 누구나 오래 살잖아요. 그런데 무조건 생명만 붙어 있다고 사는 게 아니에요. 활동을 할 수 있어야지. 뜸을 뜨면 건강하게 활동하면서 오래 살 수 있어요.”



장수혈에 뜸을 뜨면 장수한다

김남수 원장은 중국과 일본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중국에서는 백 살 넘은 노인이 문란한 성생활로 나라에 고발당해 관청에서 신체검사를 해본 결과 배꼽 밑에 밤 같은 뜸자리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200세 이상 사는 자리는 뜸밖에 없다’(중국), ‘족삼리에 뜸을 뜨고 백 살까지 살았다’(일본)는 이야기도 소개했다.

일본에서 장수 가문으로 유명한 만평(萬平)의 집안은 3대에 걸쳐 6명이 100세가 넘도록 살았다. 이 집안의 장수비결은 삼리(三里)혈에 뜸을 뜨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삼리혈은 장수혈로 불린다. 상체에 몰린 기운을 하체로 내려오게 하는 자리인 만큼 하체에 힘을 되살리게 하는 곳이다. 어린이에게는 사용하지 않고 어른에게 쓰는 성인용 혈이다.

위치는 무릎 아래 쏙 들어간 곳이다. 정확한 자리는 무릎을 같은 쪽 손으로 감싸안으면서 네 손가락 아래, 그리고 중간 큰 뼈에서 바깥쪽으로 엄지손가락만큼 옆이다. 이곳에 뜸을 뜨면 장수할 수 있다는 것이 김 원장의 설명이다. 김 원장은 “나도 장수혈에 뜸을 뜬다”면서 “벼슬·돈에 관계없이 누구나 똑같은 자리에 뜸을 뜨는 것이기에 뜸은 차별이 없다”고 말했다.





5. 단학으로 건강 다지는 신건성씨(63세·단학전문강사)

“검은 빛 얼굴이 맑게 변했다고 해요”

1944년생인 신건성씨(63)는 독특한 예다. 정념퇴임 후 뒤늦게 단학수련을 하게 된 신씨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용인에 살고 있는 그는 인근 토월 약수터에서 매일 새벽 50∼70명의 사람들에게 수련을 지도한다. 단월드 전문강사인 그는 국민생활체육 경기도단학기공연합회 회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신씨는 60세 이후 장수를 위한 새로운 생활에서 성공적으로 첫 발을 디뎠다고 자부한다.

“새롭게 태어난 느낌입니다. 정말 배우길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농기계업체인 대동공업(주)에서 영업본부장으로 근무하다 2001년 정년퇴임했다. 영업본부장이라는 직책이 말해주듯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 불규칙한 식사, 빈번한 술자리, 밤 늦은 퇴근이 그의 일과였다. 휴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한 가운데 운동이라고는 업무상 하게 된 골프뿐이었다. 배가 불룩 나와 골프 스윙이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였다는 것이 신씨의 이야기. 경험에서 오는 정확성으로 골프 실력을 겨우 유지했다고 한다.

정년퇴임 후 큰딸이 있는 미국으로 부부가 함께 여행하면서 단학수련에 접하게 됐다. 딸은 미국 워싱턴 DC에서 단월드 원장을 맡고 있다. 국내에 돌아와 6개월 수련과정을 등록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2개월이 지난 후에야 부부가 함께 수련을 시작했다.

변화는 서서히 찾아왔다. 머리끝이 아파 고통스러워 하던 부인은 통증이 없어졌다. 신씨의 검은 빛깔 얼굴은 맑은 얼굴로 변했다. 허리 치수가 3인치, 몸무게가 6㎏ 빠졌다. 변화는 친구의 부인들이 먼저 알아챘다. 동창회에 나가면 친구 부인들이 “무엇을 해서 요즘 얼굴이 번쩍번쩍하냐”고 물어온다는 것. 그때마다 기공과 호흡법을 권하지만 대부분 지나가는 이야기로 흘려버린다고 한다.

신씨는 스스로 몸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다. 1년에 두 번 환절기 때면 꼭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한 달 정도 고생하던 것이 수련을 시작하면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지금은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조금 불편하다 싶으면 넘어간다고 한다. 신씨는 “젊었을 때 조금 더 빨리 할 걸 그랬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과식을 하지 않게 되고 식사를 조절하게 된 것도 그가 얻은 특혜. 잠을 적게 자도 피로하지 않다고 한다. 그의 생활도 자연스럽게 변했다. 매일 5시 50분 일어나 집에서 정충(精充)호흡수련과 명상을 한다. 6시 30분이면 인근 약수터에서 1시간 동안 새벽 수련을 가르친다. 낮에는 시민단체인 경기국학운동시민연합에서 사무국장으로 우리역사 알리기 운동과 봉사활동, 무료 수련지도, 외부 특강 활동을 한다. 저녁 8시 30분에는 1시간 30분 동안 단월드 수지센터에서 부부가 함께 수련을 받는다. 부인 역시 전문강사로 인근 경로당에서 노인들에게 무료로 수련을 지도한다.

큰병 없이 지내온 신씨는 모친이 87세, 부친이 73세까지 수를 누려 자신도 장수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주위의 친구들이 약을 먹고 건강이 좋지 않음을 이야기할 때면 수련을 권유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나이 먹는 것을 모를 정도예요. 건강은 돈으로 정말 환산할 수가 없죠. 몇 살까지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사는 ‘삶의 질’이 중요하잖아요. 내 마음이 편안해진 만큼 다른 사람도 느끼게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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